愛の敵である批判(ルカ7:36-50)-2019. 6.30. 聖霊降臨後3主日 > 説教

본문 바로가기
説教

愛の敵である批判(ルカ7:36-50)-2019. 6.30. 聖霊降臨後3主日

페이지 정보

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7-11 00:32照会179회 댓글0건

본문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ネット上で面白い文を読みました。
하루는 천사가 당신에게 와서 백만엔을 주겠다고 합니다.
ある日、天使があなたのもとに来て、100万円を与えると言います。
그런데 당신에게 백만엔을 주는 조건이 있습니다.
でも、あなたに100万円を与える条件があります。
당신이 백만엔을 가지게 될 때,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의 100배, 즉 1억엔이라는 돈을 받게 됩니다.
あなたが100万円を受け取ることにすると、あなたが一番大嫌いな人は、あなたの100倍、すなわち、1億円を受け取ります。
당신이라면 백만엔을 가지겠습니까?
あなたなら、100万円を受け取りますか。

여러분 어떻습니까?
皆さんはいかがでしょうか。
지금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今、一番嫌いな人を思い出してみてください。
그리고 선택해 보십시오.
そして、選択してみてください。
여러분들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皆さんなら、どちらを選びますか。
저는 고민 끝에 백만엔을 받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私は悩んだ末、100万円を受け取らない方を選びました。
백만엔이라는 돈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1억엔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100万円というお金は少ないお金ではありませんが、私はわたしの大嫌いな人が1億円を受け取るということが嫌でした。
그가 1억엔을 받고 좋아할 생각을 하니 화가 났습니다.
彼が1億円を受け取って、喜ぶところを思い描くと、腹が立ちました。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億円を受けるほどの資格がない人だからです。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에는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ところが、今日の福音書には、私の考えとは全く違うことが書かれています。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제 생각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そしてこの言葉を通して、イエス様は、私の考えが正しくないことを教えてくださいます。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今日の福音書は、イエス様がシモンというファリサイ派の人の家に招待されたことから始まります。
36절의 말씀입니다.
36節の御言葉です。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あるファリサイ派の人が、一緒に食事をしてほしいと願ったので、イエスはその家に入って食事の席に着かれた。」
바리새인들 모두가 예수님을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みんなが、イエス様を嫌が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몇 몇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흥미를 느꼈고, 그 중 일부는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いく人かのファリサイ派の人は、イエス様の言葉に興味を感じ、そのうちのいく人かは、イエス様を預言者だと思いました。
요한복음 3장에서 나오는 니고데모가 그러한 사람입니다.
ヨハネによる福音書3章でのニコデモがそのような人でした。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도 예수님이 선지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そして今日の本文のファリサイ派の人も、イエス様が預言者かもしれないと思いました。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같이 식탁에 앉았습니다.
それで、イエス様を自分の家に招待して、一緒に食事の席に着きました。

유대인들의 식사 문화는 지금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ユダヤ人の食事文化は、今の私たちとは違いました。
지금 우리는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하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비스듬하게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今、私たちはテーブルの前に座って食事をしますが、当時のユダヤ人たちは、ヘレニズムの影響を受けていたので、ななめに座って食事をしました。
영화 벤허를 보면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나옵니다.
映画「ベンハー」を見ると、ローマの皇帝と貴族たちが一緒に食事するシーンが何度も出てきます。
이 장면에서 황제와 귀족들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식사를 합니다.
このシーンで皇帝と貴族たちは斜めに座って、まるで横になっているようにして食事をします。
아마도 예수님도 이러한 자세로 식탁에 앉으셨다고 생각합니다.
たぶん、イエス様もこのような姿勢で食事の席に着かれたと思います。
그리고 예수님께서 식탁에 앉으셨을 때에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が食卓に座っておられたとき、特別なことが起こりました。
37-38절의 말씀입니다.
37-38節の御言葉です。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この町に一人の罪深い女がいた。イエスがファリサイ派の人の家に入って食事の席に着いておられるのを知り、香油の入った石膏の壺を持って来て、後ろからイエスの足もとに近寄り、泣きながらその足を涙でぬらし始め、自分の髪の毛でぬぐい、イエスの足に接吻して香油を塗った。」

여기서 “그 동네에”라는 것은 당시의 관용적인 어법으로 “잘 알려져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ここで、「この町に」というのは、当時の慣用的な表現として「よく知られている」という意味を持っています。
다시 말해 이 여자의 죄가 무엇인지 그 동네에서 잘 알려져 있다라는 것입니다.
つまり、この女の罪が何なのか、この町ではよく知られ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
전승에 의하면 이 여자의 죄는 매춘이었다고 합니다만, 정확한 죄명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伝承によると、彼女の罪は売春だったそうですが、確かな罪名が何なのかは、よく分かりません。
여하튼 이 여자는 죄를 지었고 모두가 이 여자의 죄를 알았습니다.
とにかく、この女は罪を犯し、みんながこの女の罪について知っていました。
그런데 이러한 여자가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ところが、このような女がイエス様のもとに来ました。
그리고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そして、足もとに近寄って、泣きながらその足を涙でぬらし始め、自分の髪の毛でぬぐい、足に接吻して香油を塗りました。
이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여러분은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このような行いが何を意味しているか、みなさんはご存知だと思います。
당시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当時、そこにいた人々も、ある程度は知っていたと思います。
그러나 이 행동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しかし、この行いを見ていたファリサイ派の人は、全く違う考えをしていました。
39절의 말씀입니다.
39節の御言葉です。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イエスを招待したファリサイ派の人はこれを見て、『この人がもし預言者なら、自分に触れている女がだれで、どんな人か分かるはずだ。罪深い女なのに』と思った。」

지금의 우리는 바리새인에 대해 어느 정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바리새파가 생겨난 계기는 순수했습니다.
今の私たちは、ファリサイ派の人について、ある程度否定的な見解を持っていますが、ファリサイ派が生まれたきっかけは、純粋でした。
율법 준수,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律法を守る、すなわち、神の言葉を守ることが彼らの目的でした。
하지만 신약 성서에서의 바리새인들은 대부분 위선자로만 나타내어지고 있습니다.
しかし、新約聖書での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ほとんど偽善者という意味だけで表されています。
그 이유는 지나치게 율법 준수를 강조하다 보니 위선과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その理由は、彼らが律法の遵守を強調しすぎたので、偽善と形式主義に陥るようになったからです。
오늘의 복음서에서의 시몬이라는 바리새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におけるシモンというファリサイ派の人も同じでした。
죄를 지은 한 여자의 회개의 행동을 보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罪を犯した女の悔い改めの行動を見ましたが、そのことを認めませんでした。
단지 죄를 지은 여자가 예수님을 만졌다는 것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ただ、罪を犯した女がイエス様の体に触れたということだけに気を使いました。
그리고 이 일을 예수님의 정체성을 시험하는 것으로 사용했습니다.
そして、このことをイエス様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試すことに使いました。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이라는 말이 그 증거입니다.
「この人がもし預言者なら」という言葉がその証拠です。

여러분, 죄를 짓지 않는 것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皆さん、罪を犯さないことと罪を許して受け入れること、この二つの中でどちらがより大きいと思いますか?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罪を犯さないことが重要ではない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
물론 중요하지요.
もちろん重要でしょう。
그러나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しかし、罪を犯さずに生きている人は、この世の中にはいません。
모두가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みんなが罪を犯して、罪の中に生きていきます。
그렇다면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それでは、罪を犯すことよりも大きいことは何でしょうか。
죄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罪を許して受け入れる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
하지만 바리새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しかし、ファリサイ派の人は、そのことを受け入れませんでした。
자신이 내린 판단, 즉 저 여자는 죄인이다라는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自分が下した判断、つまり、その女は罪人だという批判から離れませんでした。
죄에 대해 내린 자신의 판단이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컸다라는 것입니다.
罪について下した自分の批判が、罪を許して受け入れることよりも大き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
그리고 우리도 바리새인과 일정 부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そして、私たちもファリサイ派の人と、ある程度、同じ考えを持っていると思います。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에게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의 예화를 말씀해 주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ファリサイ派の人に、借金を帳消しにされた人の例え話を教えてくださいます。
41-42절의 말씀입니다.
41-42節の御言葉です。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서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은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イエスはお話しになった。『ある金貸しから、二人の人が金を借りていた。一人は五百デナリオン、もう一人は五十デナリオンである。二人には返す金がなかったので、金貸しは両方の借金を帳消しにしてやった。二人のうち、どちらが多くその金貸しを愛するだろうか。』」

이 질문의 답은 뻔합니다.
この質問の答えは明らかです。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입니다.
より多くの借金を帳消しにされた人です。
바리새인도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 받은 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ファリサイ派の人も「帳消しにしてもらった額の多い方だと思います」と答えました。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판단이 옳다”라고 말씀하십니다.
するとイエス様は、「そのとおりだ」と言われました。
그리고 판단이라는 것이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좋지 않다라는 것을 바리새인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そして批判ということが許して受け入れることよりもよくないということを、ファリサイ派の人に教えてくださいます。

44절부터 4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행동을 판단하신 말씀입니다. 
44節から46節までの言葉は、イエス様がファリサイ派の人の行動を批判なさった上での言葉です。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충분히 대접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ファリサイ派の人は、イエス様を十分なもてなしをしなかったと思います。
이것을 알기 쉽게 일본의 전통적인 손님 접대 문화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これを分かりやすく、日本の伝統的な客の応接の文化と比べてみます。
보통 손님을 초대하면 집 주인은 문 앞까지 와서 정 자세로 앉아 인사를 합니다.
普通、お客様を招待したら、家の主人は、玄関の前まで来て、正座して挨拶をします。
그리고 손님이 벗은 신발을 잘 정리하고 집 안으로 안내를 하지요.
そしてお客様がぬいだ靴を整えて、家の中へ案内をします。
손님에게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제공하고 차를 한 잔 내옵니다.
お客様にゆったりと座ることができる椅子や座布団を提供し、お茶を出します。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손님은 자신이 접대를 잘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このような過程を通して、お客様は、良いもてなしを受けていると感じます。
이처럼 당시의 유대인들은 손님이 집으로 왔을 때에 발 씻을 물을 제공했고, 입 맞추었고, 머리에 감람유를 부었습니다.
このように、当時のユダヤ人たちは、お客様が家に来た時には、足を洗う水を用意し、接吻して、お客様の頭にオリーブ油を塗りました。
그러나 바리새인은 이러한 과정 없이 예수님을 집 안으로 들였습니다.
しかし、ファリサイ派の人は、これらの過程なしに、イエス様を家の中へ入れました。
그리고 예수님에게 온 죄를 지은 여자를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했고, 그 여자를 통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のもとに来た罪深い女を自分の基準で批判し、その女を通してイエス様を試そうとしました。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심으로 바리새인을 판단을 내리는 자에서 판단을 받는 자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イエス様はこのことをファリサイ派の人に言われることによって、ファリサイ派の人を批判を下す者から、批判を受ける者にしてしまいます。
판단을 받는다라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批判を受けるということが、どれほど良くないのか教えてくださるのです。
그리고 그 바리새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そして、ファリサイ派の人にこう言われます。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47절).”
「この人が多くの罪を赦されたことは、わたしに示した愛の大きさで分かる。赦されることの少ない者は、愛することも少ない(47節)。」
죄보다 사랑이 더 크다라는 것입니다.
罪より愛がより大きいということです。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죄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보다 사랑을 가지고 용서를 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許しを求める者に罪について批判することよりも、愛を持って許してくれることが重要だということです。
그리고 예수께서는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は女に「あなたの罪は赦された」と言われます。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この言葉は、私たちにも大事だと思います。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批判より大事なものは愛ですね。
사랑을 가지지 않고서는 우리 역시도 바리새인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愛がないと、私たちもファリサイ派の人と違うところがありません。
이 뿐 아니라 사랑이 없다면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これだけでなく、愛がなければ、私たちも神様の批判から離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私たちは、神様の愛によって救われました。
하나님의 판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神の批判によって救わ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도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このことを覚えて、私たちも愛を施す人になりましょう。
하지만 이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しかし、このことは簡単ではないでしょう。
그래서 성령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だから、聖霊がいつも私たちと共におられますように。
성령께서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용서와 사랑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聖霊が私たちに向かっている神様の恵みを思い出させ、私たちの中に赦しと愛をお与えくださいますように。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神様の愛が私たちみんなと共にありますように祈ります。アーメン。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教会情報

連絡先: 03-4285-6094(教会)
東京都大田区池上6-21-18
教会の牧師:李正雨(イゾンウ)
E-mail:ljwman94@naver.com(イゾンウ師)

教会の礼拝及びプログラムの時間

毎週日曜日、午前11時 主日礼拝
毎週土曜日、午前11時30分 聖書研究会
毎週土曜日、午前10時、12時 英語教室
毎週水曜日、韓国語教室(生徒募集中)

Copyright © ikegamichurc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