もう泣かなくともよい(ルカ7:11-17)-2019. 6.23. 聖霊降臨後2主日 > 説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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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う泣かなくともよい(ルカ7:11-17)-2019. 6.23. 聖霊降臨後2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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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6-26 15:35照会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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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私は、子どもたちを育てながら、多くのことを経験しています。
관심도 없던 것들을 연구하게 되고, 좀 더 인내하는 것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 등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これまで関心もなかったことごとを研究をするようになったり、今まで以上に忍耐することや愛を表現することなどを学んでいます。
심지어는 아이들로 인해 일본어도 향상 되었습니다.
さらには、子どもたちのおかげで、日本語も向上しました。
큰 아이가 열이 심하게 나서 병원에 갔었을 때의 일입니다.
うちの長男が熱がひどく出て、病院に行った時のことです。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감기, 열”정도의 단어만 알고 있었습니다.
日本に来て間もない時なので、「風邪とか熱」くらいの言葉しか分かりませんでした。
의사 선생님은 큰 아이를 진찰하면서 몸의 증상이 어떤지 물어 왔습니다.
お医者先生が長男を診察しながら、体の症状について聞きました。
그리고 진찰 후 의심되는 병명을 말하면서 자세한 진찰을 위해 검사를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そして、診察の後、疑われる病名を言いながら、詳細な診察のために検査を受けることを勧めました。
권유 받은 검사를 장남에게 받게 했지만 무슨 검사인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勧められた検査は長男に受けさせましたが、何の検査なのかも分かりませんでした。
아내는 고열로 괴로워하고 있는 아이를 안고 울었고, 저는 마음 속으로 울었습니다.
妻は高熱で苦しんでいる長男を抱いて泣き、私は心の中で泣きました。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병원에서 필요한 모든 단어와 문장들을 사전에서 찾아 외웠습니다.
そして家に帰ってからは、病院で使っている必要な単語や文章などを辞書で調べて覚えました。
적어도 아이가 아픈데 말이 통하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少なくとも、子どもが痛いのに、言葉が通じなくて黙っている親であってはならないという考えだけでした。
그 덕분에 병원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대화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そのおかげで、病院で必要な基本的な会話は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아이를 키운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제 스스로도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子どもを育てると言っていますが、私自分も子供と一緒に成長していると思います。
아이에게서 배우는 것도 많고 얻는 것도 많습니다.
子どもから学ばれることも多く、受けることも多いです。
이러한 과정에서 아버지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このような過程を通して、父になっていくようです。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깊어 가고 있습니다.
そして、子への愛も深まっています。

오늘의 복음서에는 참 안타까운 이야기가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には、切ない話が書かれています。
나인이라는 동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ナインという町で行われたことです。
나인이라는 동네는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갈릴리 근처의 마을입니다.
ナインという町は、イエス様が活動なさったガリラヤ近くの町です。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인으로 가셨습니다.
イエス様は福音を宣べ伝えるために、ナインに行かれました。
그리고 그 마을의 문 근처에서 장례 행렬과 마주치게 되셨습니다.
そして、その町の門に近づかれると、葬列とあうことになりました。
12절의 말씀입니다.
12節の言葉です。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イエスが町の門に近づかれると、ちょうど、ある母親の一人息子が死んで、棺が担ぎ出されるところだった。その母親はやもめであって、町の人が大勢そばに付き添っていた。」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私はこの言葉を読んで心が痛かったのです。
한국 속담에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韓国のことわざに「親が死んだら土に葬り、子が死んだら胸に葬る」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
그만큼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관계는 깊다라는 것입니다.
それほど、親子の関係は深いということです。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같을 것입니다.
韓国だけでなく、全世界のどの国でも同じでしょう。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에서의 모자 관계는 더욱 특별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ところが、今日の福音書での親子の関係は、もっと特別ではないだろうかと思います。
왜냐하면 어머니가 과부인데다가 자식이 독자이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お母さんがやもめであり、子どもは一人息子だからです。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깨어져 버렸습니다.
しかし、このような関係は、切れてしまいました。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一人息子が死んだからです。
저도 아이가 있는 아버지로서 이러한 일의 괴로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私も子どもがいる親として、ある程度、このようなことの辛さを感じられます。
게다가 남편이 없는 과부의 독자입니다.
さらに、夫がいないやもめの一人息子です。
아들이 과부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この息子がやもめのすべてだ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でしょう。
그런데 죽음이 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ところが、死がこの二人の間を引き離しました。

예수님은 이 아들의 장례 행렬과 마주쳤습니다.
イエス様は、この息子の葬列と行き合いました。
그리고 이 과부를 보셨습니다.
そして、このやもめを見ました。
13절의 말씀입니다.
13節の御言葉です。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主はこの母親を見て、憐れに思い、『もう泣かなくともよい』と言われた。」
보통 이러한 상황에서는 위로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습니다.
普通このような状況では、慰められる言葉は多くないでしょう。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정도가 위로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일 것입니다.
「神様からの慰めが共にありますように」、くらいが慰められる言葉の全部だと思います。
그런데 예수님의 위로는 달랐습니다.
ところが、イエス様の慰めは、違いました。
“울지 말라”
「もう泣かなくともよい」
위로의 말 치고는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慰めの言葉としては、一般的ではないと思います。

만일 이러한 말을 제가 들었다면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もし、私がこのような言葉を聞いたら、腹が立っていたと思います。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相手への理解と配慮が足り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でしょう。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진정한 위로였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のこの言葉は、真の慰めでした。
14절의 말씀입니다.
14節の御言葉です。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そして、近づいて棺に手を触れられると、担いでいる人たちは立ち止まった。イエスは、『若者よ、あなたに言う。起きなさい』と言われた。」

예수님의 위로는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イエス様の慰めは、一般的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그리고 예수님의 행동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そして、イエス様の行動も一般的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14절에 “관에 손을 대었다”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거리끼는 것입니다.
14節に「棺に手を触れられる」と書かれていますが、このことはユダヤ人たちによっては、とてもつまずかせることです。
구약성서 민수기에 보면 시체에 손을 대면 부정해 진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旧約聖書の民数記をみると、遺体に手を触れたら汚れると書かれていま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イエス様は棺に手を触れられました。
그리고 죽은 자를 향해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고, 15절의 말씀처럼 죽은 자가 일어나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そして、死者に向かって「起きなさい」と言われ、15節の言葉のように死人は起き上がってものを言い始めました。

율법대로라면 예수님이 부정해지는 것입니다.
律法の通りだったら、イエス様が汚れるでしょう。
정결례를 통해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清めの儀式を通して、ご自分を清めさせなければなりません。
그러나 예수님은 부정해지지 않았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汚れなかったのです。
오히려 부정한 것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むしろ、汚れがきれいになりました。
죽었던 자가 일어났고, 죽음의 슬픔은 부활의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死んだ者が起きて、死の悲しみは、復活の喜びに変わりました。
죽음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死は人々を無力にします。
슬픔과 이별을 가져다 주고, 관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悲しみと別れをもたらし、棺に手を触れることだけで、人は汚れたものになります。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 앞에서의 죽음은 무력합니다.
しかし、逆に、イエス様の御前での死は、無力です。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 수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イエス様を汚させることも、イエス様に従う人々を悲しませることも、できません。
죽음 뿐만이 아닙니다.
死だけではありません。
이 세상에 모든 부정한 것들도 예수님 앞에서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この世のすべての汚れたものも、イエス様の御前では、力を失ってしまいます。

오늘의 복음서 본문 앞에는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종을 고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今日の福音書の箇所の前には、イエス様が異邦人(百人隊長)の部下をいやしてくださる場面が出てきます。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과의 접촉은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ユダヤ人にとって異邦人との接触は、汚れることでした。
그래서 유대인들은 시장이나 광장과 같은 곳에서 돌아오면 손을 씻었습니다.
だから、ユダヤ人たちは、市場や広場のようなところから帰ってきたら、手を洗いました。
손을 씻는다는 것은 자신을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手を洗うということは、自分を清めにするという意味です。
그런데 예수님은 이방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셨습니다.
ところが、イエス様は異邦人を避けるのではなく、会いに行かれました。
이방인과 접촉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異邦人と接触しても、イエス様が汚れることではないからです。
그리고 이방인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そして異邦人の部下の病気を癒してくださいました。
이러한 일들은 세례 요한에게도 알려졌습니다.
このようなことは、洗礼者ヨハネにも知られました。
오늘의 복음서 본문 이후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만남이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の箇所の後には、洗礼者ヨハネの弟子たちとイエス様の出会いが書かれています。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신 일들을 세례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イエス様は洗礼者ヨハネの弟子たちに、ご自分がなさったことを洗礼者ヨハネに伝えなさいとおっしゃいます。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その意味は何でしょうか。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가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神の子、つまりメシアが来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그리고 그 메시아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됩니다.
そして、そのメシアによって、人々はもう泣かなくともいいのです。
부정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汚れることを恐れる必要はありません。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깨끗하게 하셨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イエス様がすべての人をきれいにし、救っ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성서에서의 인간의 역사는 죄로 인해 타락하고 부정하게 되었다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聖書における人間の歴史は、罪によって堕落して、汚れたものになったということから始まります。
아담의 죄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アダムの罪が代表的なものです。
그래서 유대인들은 부정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정결례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だからユダヤ人は、汚れることを恐れ、清めの儀式というものを通して、自らをきれいにしました。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것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しかし、イエス様はこのような汚れにはぜんぜん影響を受けませんでした。
되려 부정한 것이 예수님과 만나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かえって、汚れたものがイエス様に出会うと、きれいになりました。
병도, 죽음도, 귀신들린 사람도 모두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病気も、死も、悪霊に取りつかれた人も、みんながきれいになりました。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メシアが来られたのです。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됩니다.
だから、私たちはもう泣かなくてもいいのです。
예수님으로 인해 모든 것은 깨끗하게 되었고, 우리는 모든 부정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イエス様によってすべてのことはきれいになり、私たちは、すべての汚れることから救われました。

17절에는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17節には「イエスについてのこの話は、ユダヤの全土と周りの地方一帯に広まった」と書かれています。
당시에는 죽음으로부터 일어난 일이 화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当時には、死から死人が起き上がったということが話題になったのでしょう。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일이 아니라 이 기적의 의미가 화제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しかし、今の時代を生きている私たちにとっては、このようなことではなく、この奇跡の意味が話題になるべきだと思います。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 진정한 위로, 평화등을 받아들이고 전해야 합니다.
イエス様から来る救い、真の慰め、平和などを受け入れ、宣べ伝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
시대를 불문하고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時代を問わず、イエス様の助けが必要な人はたくさんいます。
우리들이 예수님의 도움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私たちがイエス様の助けを宣べ伝えるものになりますように。
두려움과 불안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恐れと不安の中にいる人たちに、イエス様の良い知らせを伝えるものになりますように。
사람들이 더 이상 울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人々がイエス様の福音を聴いて、もう泣かない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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