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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和があるよ うに(ルカ24:36-43)-2019.5.5.復活後第2主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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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成者 최고관리자 作成日19-05-15 23:35照会1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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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일입니다.
去年のことです。
하루는 우리 집 장남이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치과에 갔었습니다.
ある日、うちの長男は歯が痛いと言ったので、歯医者さんに連れて行きました。
검사를 해 보니 충치가 생겨서 치료할 날짜를 잡고 집으로 왔습니다.
検査を受けてみると、虫歯ができていたので、治療の日取りを決めて帰りました。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ところが、問題が起こりました。
장남이 치과에서 입을 벌리지 않는 것입니다.
治療に行ったとき、長男は歯医者の先生の前で口をあけなかったのです。
몇 번이고 치과에 갔었지만 치료가 무서운 나머지 입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何度も歯科に行きましたが、治療の時、恐れのあまり、口を固く閉じていました。
치료를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충치가 생긴다고 말해 주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治療を受けないと、より多くの虫歯ができると言っても、どうしようもなかったのです。
혼도 내보았고, 얼러도 보았습니다.
叱り付けても、あやしても、ダメでした。
간신히 충치가 퍼지지 않도록 약 정도만 바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ようやく虫歯が広がらないように、薬だけを塗る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
매 번 그러한 일이 발생하자 치 의사 선생님도 포기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毎回このようなことが起こって、歯医者の先生もあきらめるほど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그리고 그 치과에서 치료하지 못한 채 다른 치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そして、その歯科で治療を受けないまま、他の歯科に行くことになりました。

그런데 새로 옮긴 치과는 좀 달랐습니다.
でも、新たに移った歯科の先生は、やり方が違いました。
전의 치과는 아이가 스스로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前の歯科では、子供が自分で口をあけるまで待っていました。
그런데 새로운 치과에서는 치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강하게 밀어 붙였습니다.
ところが、新しい歯科では、歯医者の先生が治療を強く押しました。
아이를 달래도 입을 벌리지 않자 억지로 입을 벌리고 치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子供をあやしても、口を開けないと、あえて口を開けて治療を始めました。
결국은 이빨을 치료를 했고, 신기하게도 장남은 그 다음부터 스스로 입을 벌렸습니다.
結局は歯の治療を受けました。
そして、不思議なことですが、長男はその次からは、自分で口を開けました。
지금 장남은 치과를 예전처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今の長男は歯科を以前のように恐れません。
그 한 번의 치료가 두려움을 이겨내게 한 것입니다.
その一回の治療が、恐れを打ち勝たせたのです。

저는 오늘의 복음서에서 이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私は今日の福音書でこれと似ていたことを発見しました。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여러 번 가르쳤습니다.
イエス様はご自分の復活について、弟子たちに何度も教えられました。
그러나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しかし、弟子たちは、復活が信じられませんでした。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거는 많이 있었습니다.
イエス様が復活なさった証拠はたくさんありました。
빈 무덤과 천사의 고지가 있었습니다.
空いた墓と天使の告知がありました。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명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エマオへの途上で二人の弟子たちは、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と出会いました。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른 제자들에게 할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そしてこの話を他の弟子たちに語っていたとき、イエス様は弟子たちの前に現れました。
36절의 말씀입니다.
36節の御言葉です。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こういうことを話していると、イエス御自身が彼らの真ん中に立ち、『あなたがたに平和があるように』と言われた。」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あなたがたに平和があるように」
이러한 인사를 통해서도 제자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このような挨拶を通しても、弟子たちは、自分たちの前に現れた人がイエス様だと気づくことができたのだと思います。
왜냐하면 이 인사는 누가복음 10장 5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마을로 파송했을 때에 가르쳐 준 인사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なぜなら、この挨拶は、ルカによる福音書10章5節で、イエス様が弟子たちを村へ遣わされたときに、教えてくださった挨拶だったからです。
예수님은 여러 방법 통해 자신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셨습니다.
イエス様は、いくつかの方法によって、ご自分の復活を弟子たちに教えてくださろうとなさいました。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それにもかかわらず、弟子たちは、イエス様の復活が信じられませんでした。
37절의 말씀입니다.
37節の御言葉です。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彼らは恐れおののき、亡霊を見ているのだと思った。」

그 당시의 사람들은 망령의 존재를 믿고 있었습니다.
当時の人々は、亡霊の存在を信じていました。
사무엘상 28장이나 이사야서 8장에는 무당이나 영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サムエル記上28章とイザヤ書8章では、口寄せや霊媒の話が出てきます。
그리고 그들이 죽은 사람의 망령을 불러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そして、彼らが死んだ人の亡霊を呼び出すこともできると思っていました。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망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そういう背景があったので、弟子たちは、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を亡霊だと思いました。
부활은 경험한 적이 없지만 망령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復活は経験したことがなかったのですが、亡霊については知っていたからです。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このような観点からみると、今の時代の人々がイエス様の復活について信じられないことも、無理ではないと思います。
부활을 경험한 적도 없고, 부활에 대해 일상 생활에서 들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復活を経験したこともなく、復活について、日常生活の中で聞いたこともないからです。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생활을 했던 제자들도 부활에 대해 믿지 못했습니다.
イエス様と約3年間一緒に生活をしていた弟子たちも、復活について信じられませんでした。
마치 치 의사 앞에서 입을 벌리지 못하는 우리 집 장남처럼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 두려움에 떨 뿐이었습니다.
まるで歯医者の前で、口をあけられなかったうちの長男のように、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を見て、恐れおののくだけでした。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それで、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こう言われました。
38~39절의 말씀입니다.
38〜39節の御言葉です。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なぜ、うろたえているのか。どうして心に疑いを起こすのか。わたしの手や足を見なさい。まさしくわたしだ。触ってよく見なさい。亡霊には肉も骨もないが、あなたがたに見えるとおり、わたしにはそれがある。」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부활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イエス様は、弟子たちが復活について疑わないように望まれたと思います。
그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だから、弟子たちに、ご自分を触ってよく見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
그리고 “자신의 손과 발을 보이셨습니다(40절).”
そしてイエスは、手と足をお見せになりました(40節)。
이 모든 일들은 부활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このすべてのことは、復活という特別な状況を示すためでした。
많은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사람의 영은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多くの人々は、死後の人の霊は、天国に行くと思っています。
그래서 이러한 생각 안에서 일어나는 부활은 천국으로 가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だから、この考え方の中で起こる復活は、天国に行くための手段の一つになってしまいます。
그러나 우리의 영만이 천국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천국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부활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しかし、私たちの霊だけが天国に行くことでもなく、天国に行くための手段として復活が必要なわけでもありません。
부활은 일종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復活は一つの新しい創造です。
예수님의 부활처럼 우리 역시도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되겠지요.
イエス様の復活のように、私たちもやはり新しい体を与えられるでしょう。
그리고 그 몸은 천국과 이 땅 둘 다에 속할 것입니다.
そして、この体は、神の国とこの世、両方に属するものです。

예수님께서 자신을 만져보라고 하시고 손 발을 보이셨다라는 것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イエス様がご自分の体を触らせて、手と足を見せたというのは、肉体を持っていたということです。
그런데 그 육체는 이 세상의 육체와는 달랐습니다.
ところが、その肉体はこの世のものとは違いました。
제자들 앞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기도 했고,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弟子たちの前で、瞬間的に消え去ったり、現れたりなさいました。
그래서 제자들은 그 육체를 망령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だから弟子たちは、その肉体を亡霊だと思っていたのです。
그러나 망령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그 육체를 볼 수도 있었고 만질 수도 있었습니다.
しかし、亡霊とは違って、弟子たちはその肉体を見ることができ、触ることもできました。
예수님의 부활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イエス様の復活は、特別なものでした。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것이었습니다.
私たちが想像もできない他の世界のものでした。
부활에 대해서 우리는 일부 밖에 알 수가 없습니다.
復活について、私たちは一部しか知ることができません。
부활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아는 것이 전부입니다.
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の姿を通して知られることがすべてです。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 이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몸을 신령한 몸이라고 썼습니다.
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15章でパウロは、復活の後に、私たちに与えられる体は、霊の体だと書きました。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理解しにくい言葉ですが、私たちは霊の体で復活することになるのです。
그리고 다시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そして、決して死ぬことはありません。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것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라셨다고 생각합니다.
イエス様は、弟子たちがこのことについて分かることを願われたと思います。
만일 그렇다면 제자들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겠지요.
もしそうしたら、弟子たちは、もはや恐れおののくことはないでしょう。
예수님의 문안 인사처럼 평안할 것입니다.
イエス様の挨拶のように平安があるでしょう。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이셨다고 생각합니다.
だから、イエス様は弟子たちに手と足をお見せになったのだと思います。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しかし、弟子たちはまだ信じられませんでした。
오늘의 복음서 41절에는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今日の福音書41節には、「彼らが喜びのあまりまだ信じられず、不思議がっているので、」と書かれています。
손과 발을 보았지만 망령이 아니라고 100% 확신하지 못한 것입니다.
手と足を見ましたが、亡霊ではないと100%確信していなかったのです。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이 확신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으십니다.
すると、イエス様は弟子たちが確信できる外の方法をお探しになりました。
41절부터 43절의 말씀입니다.
41~43節の言葉です。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イエスは、『ここに何か食べ物があるか』と言われた。そこで、焼いた魚を一切れ差し出すと、イエスはそれを取って、彼らの前で食べられた。」

망령은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생선 한 토막을 드셨습니다.
亡霊は何も食べれません。
それで、イエス様は、弟子たちの前で焼いた魚一切れを召し上がりました。
망령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亡霊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表わすためでした。
저는 이 장면이 마치 우리 집 장남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치료하는 치 의사 선생님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私はこの場面が、まるで、うちの長男の口を押しあけて治療した歯医者の先生と同じだと思いました。
도무지 입을 벌리지 않는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입을 억지로 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まったく口を開けない子供を治療するために、時には、口を押しあけることも必要なのだと思います。
어떤 학자는 예수님께서 생선을 드셨던 것이 상징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ある神学者は、イエス様が魚を召し上がったことが、象徴的な行動だと主張しています。
이 행동이 성찬의 신학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고, 생선을 드셨다라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この行動が聖餐の神学と関連があるのだと主張している学者がいて、魚を召し上がったということが特別な意味があるのだと主張している学者もいます。
그러나 저는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부활의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을 위해 주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しかし、私は、このようなイエス様の行動は、復活の証拠を見ても信じられなかった弟子たちのために与えられた恵みだったと思います。
제자들에게 억지로 베푸신 은혜입니다.
弟子たちに押し与えられた恵みでした。
그리고 이러한 은혜를 통해 제자들은 평화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そして、このような恵みを通して、弟子たちは、平和になることができました。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부활에 대해 머리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愛する皆さん。教会の中でも多くの人々は、復活について頭で理解しようとしています。
그러나 부활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しかし、復活は完全に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ものだと思います。
다른 세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外の世界のものだからです。
여러분들의 가방이나 호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생각해 보십시오.
皆さんのかばんやポケットに入っている携帯のことを考えてみてください。
밀레니엄 시대라고 불렀던 2000년에도 이러한 핸드폰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ミレニアム時代と呼ばれた2000年にも、このような携帯は、想像もできませんでした。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단 10분 뒤의 미래도 알 수 없습니다.
現在を生きている私たちは、わずか10分後の未来も知ることができません。
그런 우리가 다른 세상의 것인 부활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요.
そんな私たちが、他の世界のものである復活を、理解する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
그저 부활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부활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ただ復活は、私たちに与えられるものであり、復活が私たちに与えられる理由は、私たちに平和をくださるための神の恵みだと思います。
제자들에게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弟子たちに真の平和をくださるために、復活なさったイエス様は、弟子たちの前に現れました。
그리고 평화를 얻은 제자들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そして復活によって平和を受けた弟子たちは、このすべてのことの証人になりました。
제자들이 얻은 평화가 여러분들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弟子たちが受けたこの平和が皆さんにもありますように。
평화의 인생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平和の人生を生きていかれる皆さんになりますように主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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